일제의 3광정책과 경신년간도대《토벌》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최성혁


피로 얼룩진 일제의 조선침략사의 갈피에는 1920년 일제가 간도일대에서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만행도 있다. 력사에서는 이것을 경신년간도대《토벌》이라고 부른다.

그때로부터 한세기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조선민족은 1920년 간도대《토벌》에서 감행한 일제살인귀들의 대살륙만행을 잊지 않고있다.

경신년간도대《토벌》때 일제는 극악무도한 3광정책을 실시하였다.

3광이란 원래 중국말의 소광, 살광, 창광의 세가지를 가리키는데 모조리 불태우고 모조리 죽이며 모조리 빼앗는것을 말한다.

일제는 조선과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면서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략탈하라는 악랄한 3광정책을 실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중일전쟁때 화북주둔 일본군사령관인 오까무라 야스지가 화북지방의 해방구들을 공격할 때 적용했다는 3광정책(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략탈하는 정책)은 사실상 1920년대의 간도〈토벌〉에서 벌써 감행되였고 1930년대초에 이르러서는 동만의 방방곡곡에서 유격구역들을 초토화하는 본격적인 실천행동으로 그 진면모를 적라라하게 드러내놓았다.》 (《김일성전집》 제97권 10페지)

일제는 1920년 대《토벌》에서 악랄한 3광정책을 적용하여 간도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반일적인 조선사람들을 전멸시키려고 미쳐날뛰였다.

1910년 일제의 합병이후 간도지방으로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을 피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이주하였다. 3.1인민봉기직후에는 의병참가자, 독립운동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사람들이 간도지방으로 이주하였으며 그에 따라 이 지역에서는 반일투쟁이 세차게 벌어졌다.

특히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은 1919년 여름부터 갑산, 혜산, 강계, 만포, 자성 등지에서 일제침략군놈들을 적지 않게 살상하였으며 1920년 6월에는 왕청현 봉오골에 기여든 일제침략자들을 유인하여 호된 타격을 안기였다. 다른 독립군부대들도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 일제에게 타격을 주었다.

중국동북지방을 거점으로 독립군부대들의 무장활동을 비롯한 조선인민의 반일운동이 더욱 강화되는데 불안을 느낀 일제는 이 지역의 반일세력을 전멸시킬것을 획책하였다.

당시 간도지방이 중국령토인것으로 하여 침략무력을 대량 투입할수 없었던 조건에서 일제는 중국인마적단 우두머리들을 매수하여 훈춘에 있는 저들의 령사관분관에 대한 《습격》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조선독립군부대들이 습격하여 불태웠으며 일본인사상자가 발생한것처럼 꾸미였다. 그리고는 《거류민보호》의 구실로 침략무력을 간도지방에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군은 〈훈춘습격사건〉을 일으키고 씨비리출정군의 일부와 라남19사단을 동만에 투입하여 조선인거주지역에 대한 〈3광작전〉을 감행하였다.》라는 자료가 잘 말해준다.

중국동북지방에 쓸어든 일본침략자들은 3광정책을 떠들며 독립군부대들에 대한 대《토벌》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의 주요공격목표는 독립군부대들보다도 적수공권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였다.

당시 독립군부대들은 일제가 감행하는 대《토벌》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력량보강을 위하여 활동거점을 옮기였다.

일제침략군은 독립군부대들과의 전투에서 당한 패배의 수치를 간도지방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에 대한 잔인하고 야만적인 살륙으로 씻어보려고 날뛰였다.

당시 일제살인귀들의 만행을 전하는 한 자료에서는 《일본군이 만주에서 학살한 조선인은 모두가 량민이였으니 인류사상 이처럼 극악무도한 일이 또 어디에 있었겠는가. … 일본군은 훈춘패전후 갑자기 독립군소탕이라는 명목을 내걸고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훈춘을 강점한 소위 장관, 좌관이라는자들은 다수의 병력을 이끌고 각 촌락을 습격하여 인가, 학교, 교회당, 량식들을 마구 불살랐다. 남녀로소를 모조리 살해하고 생매장하고 불태우고 가죽을 벗기고 못을 박는 등 그 잔악무도한 행동은 사람으로서는 차마 볼수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조선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면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토벌》하여 모조리 죽이였다.

실례로 무장한 일본보병의 한부대는 마을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골짜기의 깊은 곳에 쌓여진 낟가리에 불을 질러 뛰여나오는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족족 사살하였으며 그 시체에 불타는 건초를 들씌워 알아볼수 없도록 불태웠다.

일제살인귀들은 10월 4일부터 불과 2주일동안에만도 3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6 000여호의 살림집들을 파괴소각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살인귀들의 야수적만행을 목격한 한 외국인은 자기의 수기에 《만주땅에 침입한 일본군은 가는 곳마다에서 조선의 늙은이, 어린이 할것없이 모조리 끌어내여 때려죽였고 못다죽이면 불길이 타오르는 집이나 재더미에 던져 타죽게 하였다. 이것을 보면서도 울지도 소리치지도 못하고 참아야만 했던 그들의 안해와 어머니들가운데는 땅바닥을 긁어 손톱이 뒤집힌이도 있었다.》라고 썼다.

1920년의 간도대참상은 과거 일본정부의 악랄한 침략정책의 직접적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한세기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력사에 류례없는 경신년간도대《토벌》의 잔인성과 야만성에 대하여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하지 않고있으며 오히려 철면피하게 식민지통치시기 감행한 대학살만행의 진상들을 은페축소하고 국가적범죄의 책임을 회피하고있다.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과거 일본의 범죄는 세월이 흘렀다고 결코 감추거나 사라질수 있는것이 아니다.

일본반동들은 피로 얼룩진 범죄의 력사를 부정하지 말아야 하며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온갖 죄악을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하여야 한다. 이것이 일본의 앞날을 위한 옳바른 선택이다.


© 2020 김일성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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